브랜드 마케팅을 업으로 하다 보니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사람들이 왜 이렇게 에르메스에 열광하나?"
가죽이 좋아서일까. 희소성이 있어서일까. 물론 그것도 맞다.
하지만 이번에 DDP에서 열린 에르메스의 체험형 전시 '미스터리 앳 더 그룸즈(Mystery at the Grooms)'를 다녀오고 나니 조금 다른 답을 찾게 됐다.
에르메스는 제품을 파는 브랜드가 아니라 자신들의 세계관을 끊임없이 체험하게 만드는 브랜드라는 것.
지금 전시는 종료되었지만,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사례로 정리해볼 만한 행사였다.

이번 전시는 무료였지만 사전 예약제로 운영됐다.
장소는 DDP 아트홀 1관.
입구에서부터 일반적인 전시라기보다는 하나의 게임에 참가하는 느낌을 준다.
관람객은 단순한 방문객이 아니라 '승마 탐정(Horse Detective)'이 된다.
퇴장과 동시에 작은 탐정 수첩을 받게 되는데, 내가 촬영한 사진 속 이 노란 스프링북이 바로 그것이다.

책자의 첫 페이지에는 이런 메시지가 적혀 있다.
"두 눈을 바짝 뜨고 잘 찾아보는 거랍니다."
이 문장이 사실 전시 전체를 설명한다.
대부분의 럭셔리 브랜드 전시는 제품을 보여준다.
하지만 에르메스는 달랐다.
관람객에게 먼저 이야기를 던졌다.
설정은 이렇다.
어딘가에 숨어버린 말들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탐정이 되어 마부들의 집을 돌아다니며 단서를 수집한다.
전시는 총 6개의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공간 하나하나가 제품 카테고리가 아니라 하나의 세계관 공간으로 설계됐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가족 전시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 보니 가장 열심히 말을 찾고 있는 사람들은 어른들이었다.
천장 위.
벽 속.
가구 뒤.
세탁기 안.
곳곳에 숨겨진 말 모양 오브제를 찾기 위해 모두가 눈을 반짝인다.
브랜드가 만든 게임에 관람객이 자연스럽게 몰입하는 순간이었다.
마케팅 관점에서 보면 정말 잘 만든 장치다.
"이 가방 예쁘죠?"라고 말하는 대신
"이 공간에서 말을 찾아보세요."
라고 말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스스로 공간을 관찰한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제품과 오브제를 보게 된다.
강요가 아니라 발견이다.
내가 촬영한 영상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공간은 런드리룸이었다.
체크무늬 바닥.
세탁기.
빨랫줄에 걸린 셔츠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숨어 있는 에르메스 오브제들.
일반적인 전시 공간이라기보다 동화 속 세트장 같았다.
관람객들이 가장 오래 머무는 공간 중 하나였다.
사진으로 보면 단순한 공간 같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디테일하다.
하나의 오브제를 발견할 때마다
"아 저기 있었네!"
하는 작은 성취감이 계속 생긴다.


전시를 돌아다니다 보면 계속 말(Horse)을 만나게 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에르메스의 시작은 마구(馬具) 공방이었다.
1837년 파리에서 시작된 브랜드의 뿌리가 승마 문화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에르메스는 이를 연대표로 설명하지 않는다.
패널을 읽게 하지도 않는다.
대신 공간 전체에 말의 흔적을 심어 놓는다.
관람객은 게임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깨닫는다.
"아, 에르메스에게 말은 단순한 로고가 아니구나."
브랜드의 기원을 스토리텔링으로 체험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전시 곳곳에는 가방, 스카프, 오브제, 가죽 제품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의외로 "비싸다"는 느낌은 강하지 않다.
오히려
에 집중하게 된다.
에르메스가 자주 이야기하는 사부아 페르(Savoir-faire), 즉 장인정신이 공간 전체에 녹아 있었다.
명품 브랜드들이 종종 가격을 보여준다면,
에르메스는 가격보다 이야기와 제작 철학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를 보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이것이다.
좋은 브랜딩은 제품 설명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다.
좋은 브랜딩은 사람들이 스스로 브랜드 세계 안으로 들어오게 만드는 것이다.
에르메스는
그런데 전시를 나오면서 오히려 브랜드에 대한 호감은 더 커졌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사람들은 광고보다 경험을 믿기 때문이다.

'미스터리 앳 더 그룸즈'는 전시라기보다 하나의 브랜드 경험이었다.
말을 찾는 게임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에르메스의 역사와 철학, 장인정신을 접하게 된다.
그리고 전시가 끝난 뒤에도 기억에 남는 것은 특정 제품이 아니라 에르메스가 만든 세계관이다.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브랜딩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이번 전시는 꽤 좋은 교과서였다.
에르메스는 여전히 제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판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가장 잘 만드는 브랜드 중 하나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한 시간이었다.
